보배 - 영적서밋 (고후4:7~10)
욥이 “주님이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온다”고 고백한다. 나의 가는 길을 주님이 아신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욥기서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주님께 대하여 귀로만 들었는데 눈으로 보게 되었다고 한다. 참 성숙한 신앙이다. 신앙의 선배들이 복음의 비밀을 많이 누렸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신앙이 성숙해지고, 쉽게 말하면 영적 서밋으로 올라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복음도 시험을 받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복음을 향해 시험이 올 때, 내가 어느 자리에 서 있는가가 전부 다다. 그것은 개인의 신앙 수준에 따라서 달라 질 것이다. 욥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 앞에 시험을 치르게 되어 있다. 어떤 시험인가? 정말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에 대한 확신이 진짜인지를 하나님은 시험 하실 것이다. 정말 우리의 헌신이 복음과 전도 선교를 향한 마음이 진짜인지 그런 시험이 우리에게도 올 것이다. 초대교회도 그랬다. 가짜는 다 도망갔다. 또 내 개인적인 부분에서도 시험이 올 것이다. 인간관계, 환경, 경제. 그럴 때 우리는 불신앙하고 짜증낼 필요가 없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믿음은 가짜가 된다. 당연히 이런 시험거리는 나에게 온다. 당연히 온다. 성경의 인물들은 다 시험을 통과했다. 모두 다가 문제 속에서 승리했다.
오늘 본문이 실제 현장이다. 우리가 우겨 싸임을 당해도, 그래도 나는 싸이지 않는다. 내 믿음이 진짜 라면 우겨 싸임을 당해도 나는 싸이지 않는다.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내 뜻대로 안되어도 낙심할 이유가 없다. 나를 보고 가정을 보고 교회를 보고 직장을 볼 때, 답답할 수 있지만, 나는 답답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는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절대로 망하지 않는 인생이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할 때 마귀의 유혹이든, 하나님의 시험이든 오게 되어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그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다. 야고보서 1장에 분명히 여러가지 시험이 온다고 하였다. 그런데 시험이 올 때, 기뻐하라고 하신다. 그게 정상적인 수준이다. 롬8장에도 우리가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긴다고 약속하신다. 시험을 주시고는 우리에게 이길 수 있다고 약속하신다. 빌4장에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 할 수 있다고 하신다. 이런 것을 발견하지 못하지 우리의 신앙이 성장 할 수 없게 된다.
오늘 본문에, 약한 우리지만, 우리 속에 보화를 담아 두셨다. 보배란 무엇인가? 질그릇처럼 약한 우리에게 보배를 담으셨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이 보배이다. 그래서 그릇이 아니고, 내 안을 잘 봐야 한다. 자꾸 밖을 보고 판단하고 계산하고 그러면 안된다. 그게 종교다. 문제 왔을 때, 환경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내 속에 있는 사실을 봐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재앙 저주 지옥 사단의 권세를 다 꺾으신 우리의 보배가 되신다. 이 분이 내 속에 보배로 와 계신다. 이것이 내게 사실화 되어야 각인이 바뀐다. 문제가 오더라도, 우리 속에 진짜 보물이 있다. 이게 남의 보물이 아닌, 나의 보물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각인이 바뀐다. 모든 재앙 저주 주님이 끝내셨다. 흑암의 권세가 나를 이기지 못한다. 그런 확신이 나와야 한다. 문제 앞에서 예수가 그리스도! 그 사실이 반석이 되어야 한다.
두 번째 내 속의 보배가 하나님 나라다. 내 안에 하나님 나라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 나는 약하지만, 주의 천사가 동원 되고, 흑암이 결박되는 하나님 나라의 배경 속에 살고 있다. 그래야 내 뿌리가 바뀐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40일 동안 집중시키셨다. 이런 저런 문제가 있어도 상관없는, 하나님 나라의 일과 미션을 설명하셨다.
그리고 보배가 뭔가 오직 성령이다.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담고 있다.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이 하신다. 문제를 주시면서 해결도 하나님이 아신다. 내가 하려고 하면 힘들다. 하나님이 해결하시니 붙어 있으면 된다고 하신다. 그러면 체질 바뀐다.
영적 서밋이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있다. 글자는 네 글자 밖에 안되지만, 내가 영적 서밋이 되려면 올라가는게 문제가 아니고 시작을 해야 된다. 내가 영적 서밋으로 올라가기 위해 시작을 해야 된다. 영적 서밋의 자리에 있어야 된다. 그 자리에 있지 못하면 시작이 안된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불신앙하면, 시작이 안되는 것이다. 그냥 말로만 하는게 아니다. 우리가 세상의 서밋은 되지 못해도 영적인 서밋은 가능하다. 영적 서밋으로 올라가기 위해 내가 그 시작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여러분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 문제의 답을 찾으려고 할 필요 없다. 어떤 일을 당할 때도 그곳에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의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이 뭔가를 찾아야 한다. 그게 영적 서밋을 시작하는 자리이다. 이것을 못보고 원망과 불평을 하고 있으면 아무런 일을 시작할 수가 없다. 이런 부분에 문이 열려야 한다. 그 계획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답을 찾아서 누리는 것이 기도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찾는 것이다. 요셉도 그랬고 바울도 그랬다. 노예가 되고, 누명을 쓰고, 죄수가 되고, 감옥에 갈 때, 원망의 수준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는 것이다.
결론이다. 우리가 영적 서밋 이라고 할 때, 먼저 시작을 해야 된다. 내 영적인 부분도 진급되어 점점 올라가야 한다. 그래야 어느 날 하나님의 때가 온다. 언약의 여정 속에 계속 가야 된다. 이 문제 저 문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오늘 밤에도 여러분이 이 자리에서 기도를 하시는데, 영적 서밋을 시작하시기 바란다.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기도라면 내 인생은 계속 달라질 것이다. 성숙한 전도자의 여정을 걸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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