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일 금요기도회
감사 (행27:20-26)
오늘 밤 만이라도 최고의 감사서밋이 되시라. 맥추감사는 끝이 아니고 진행 중이다. 가야 할 길이다. 미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미래를 바라보며 오늘 할 것은 감사다. 교회는 똑똑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똑똑한 것이다.
감사는 말에서 나온다. 구원 받은 자의 말은 권세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권세가 있다. 대통령도 권세가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말은 힘이 있다. 여러분이 그런 걸 잘 보면서 신앙생활 해야 된다. 분명히 민수기에 우리의 말 한대로 시행하시겠다고 하신다. 즉 믿음 대로 하신다고 하신다. 말이라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기도도 말이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런 중 우리가 감사의 말을 한다. 하나님은 귀에 들리는 대로 시행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잠언18장에도 죽고 사는 것이 혀에 달렸다고 한다. 말을 정말 잘 해야 한다. 원망 불평은 그대로 간다. 부정적인 사람은 그대로 간다. 언약 가진 자들의 말은 힘이 있다. 혀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떤 혀를 쓰는가 이다. 원망의 혀 인가, 감사의 혀 인가. 원망 불평만 안해도 큰 응답이 온다. 우리의 인생은 거기에 달려 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내가 어떻게 혀를 쓰고 고백하는가에 달려 있다. 다 구원 받았다. 왜 광야에서 다 죽는가? 광야에서 다 혀를 잘못 썼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도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는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사단은 말을 가지고 우리가 축복 못 받도록 한다. 없는 것과 모자란 것을 통해 우리를 유혹한다. 지금도 사단이 심어 놓은 체질이 있다. 그게 뭐냐하면, 내가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뭔가를 느끼고 보여야지만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지만 감사한다. 세상 것을 쫌 봐야 된다는 것이다. 잘 풀리고 잘 되는 것이 보여야 된다. 그래야만 감사한다. 그게 창3장이다. 그리고 가져야 한다. 성공을 가져야 한다. 그게 사단의 유혹이다. 우리의 입술로 나 스스로를 정죄하게 만든다. 쫌 우리가 부족하더라도 조심해야 한다. 자꾸 나 중심으로 달려가게 된다. 세상 것이 쫌 생기고 그래야만 된다.
오늘 본문에 보면, 보이는 건 광풍밖에 없다. 구원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가 않는다. 몇 일 동안 표류 중이다. 조금이라도 뭔가가 보이면 좋은데, 아무것도 없다.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런 환경 속, 바울의 감사다. 우리가 없는 것은 발판이다. 부족하고 모자란 것은 발판이다. 없다고, 모자라다고 원망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발판이다. 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그 속에서 하나님을 더욱 바라볼 수 있는 발판이다. 원망 불평의 발판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더 기도 속으로 들어가는 발판이다. 그것 때문에 속으면 안된다. 더 말씀을 잡는 발판이 되야 한다. 완전히 절망 속에는 잡을 게 없기에, 정말 그리스도 밖에, 말씀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더욱 기도 속으로, 말씀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절대 실패하지 않지만, 사단에게 늘 속을 수 있다. 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없다 말하고, 정말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바라봐야 할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 복음 가진 자의 체질은 소유가 아니다. 신분이다. 잊어버리면 안된다. 우리의 감사는 영적인 신분에 의한 감사이다. 사단은 세상 것을 보여주며 감사하라고 한다. 그건 소유다. 그러나 우리는 신분에 대한 감사이다. 오늘 24절에, 나의 섬기는 나의 하나님. 그게 바울의 신분이다. 감사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바울은 신분을 잡는다. 우리는 세상과 환경이 나를 삼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에 신분을 잡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 그러나 대부분 소유를 가지고 평가하고 말한다. 바울이 제일 먼저 신분을 고백한다.
그러면서 시간표를 확신한다.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그게 시간표다. 이런 것을 볼 수 있어야 감사가 나온다. 불평 원망하는 사람은 시간표를 못본다. 자기 시간표만 가지고 산다. 그러나 복음 가진 자의 감사는 하나님의 시간표를 본다. 여러분의 시간표를 확인해야 한다. 내가 언약을 가졌다면, 우리에게 시간표가 있다. 언약의 여정을 못 걷는 사람에게는 시간표는 필요 없다. 그러나 언약의 여정을 걷는 자는 방향도 목적도 있다. 반드시 시간표도 있다. 그래서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표가 오기 때문에.
25절에 그것에 확신한다. 내게 말씀 하신 대로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감사 밖에 없다. 원망 불평만 안해도 기도 응답 된다. 교회 와서 이 말, 저 말… 그게 다 하나님 귀에 들리니, 안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감사서밋이 되어 보시라. 우리는 언약을 가졌기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중에 선을 이룬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나 오직을 잡고 먼저 누린다. 감사하는 사람은 오직을 누린다. 오직을 누릴 때 유일성이 찾아온다. 유일성의 응답이 온다. 다른 사람은 안되지만 나에게는 응답이 온다. 무덤 속에 나사로만 있는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죽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사로에게만 유일성의 응답이 온다.
오늘 여러분에게 같은 집사고, 같은 중직자이지만, 여러분에게는 유일성의 응답이 있어야 한다. 남들이 체험하지 못한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문제가 와도 괜찮다. 결국 재 창조의 응답이 온다. 절대 속지 마시라. 기다리고 놔둬라. 하나님의 뜻대로 다 된다. 그냥 누리면 된다.
그래서 감사하는 자에게 미래가 있다. 감사하는 자가 미래가 있는 것이다. 내 입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달라진다. 문제 해결은 감사부터 시작된다. 모든 문제 앞에서 감사부터 해라. 뭘 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감사부터 해라. 우리는 내가 수고한 것만큼 밖에 못 번다. 그 이상은 벌기 어렵다.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는 한 세계 복음화 못한다. 가족도 4~5명 있는데? 세계 복음화 못한다.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감사는 은혜 받은 증거다. 하루 이틀은 할 수 있지만, 24시는 절대 못한다. 은혜 받은 자만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의 말도 들어보면 금방 안다. 은혜가 있는지 없는지.
또 감사는 해결 되어가고 있는 증거가 감사다. 감사는 늘 똑같이 감사다. 시작도 과정도 결과도 감사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감사하는 사람은 응답을 미리 소유하고 있다. 미리 보면서 감사하고 있다. 가나안 땅은 가게 되어 있으니까. 의식주 다 하나님이 책임지시니까. 우리는 하나님 바라보고, 성막 즉 교회에서 나의 사명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래서 감사의 눈 높이를 올려야 한다. 불신자는 조건적인 감사다. 내 뜻대로 되야 감사한다. 교회 나와도 종교적인 감사가 있다. 상대적인 감사다. 주면 주고 안주면 안준다는 식이다. 대부분이 그렇다. 좋은게 오면 드리고, 안오면 안드리고. 감사는 은혜 받은 증거고, 되어가고 있는 증거고, 응답 받을 증거다. 그러나 대부분 종교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기가 어렵다. 늘 감사부터 시작해라. 시작을 잘해야 한다. 오직을 잡고 늘 감사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감사가 쌓이고 기도도 쌓인다. 이 자리에 올 때 마다 쌓이는 것이다. 한 번 이 자리에 왔다고 갑자기 응답? 아니다. 기도와 감사는 쌓이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 성숙해진다. 문제 앞에서도 담담해진다.
복음적 감사의 수준은 절대적이다. 이래도 저래도 감사다.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져 간다. 흔들릴 필요가 없다. 음부의 권세가 못 이긴다. 사단은 우리의 마음을 읽고, 우리의 수준을 안다. 계속 건드린다. 그러나 감사가 있다면, 사단은 바로 간다. 우리가 정말로 복음이 확실 하다면, 다른 것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감사 속에는 근원적인 감사가 있다. 유월절이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 그리고 현실적인 감사도 들어가 있다. 현재의 감사, 지금의 감사이다. 근원적인 감사를 가지고, 현실 속에서도 감사한다. 그게 오순절이고 맥추절이다. 애굽에서 나와, 광야길의 현실이 어렵고 힘들지만, 감사다. 그리고 미래적 감사, 수장절의 감사다. 이 세가지 시간표가 감사 안에 들어 있다. 감사를 정말로 한다면, 이것만큼 큰 힘이 없다. 이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다.
결론 적으로, 밥 먹듯이 감사하시라. 꼭 세 번 하라는 말이 아니고, 세 번 이상은 감사해라. 적은 것이든 큰 것이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원하고 계신다. 감사는 하나님께 투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될 줄 믿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과거 현재 미래를 투자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 감사하는 자만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 일본 땅에 감사하는 자가 많이 없을 것이다. 즉 원망과 불평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여러분은 발판 삼고, 더 하나님 바라보고 더 기도하고 더 말씀 잡는 것이다. 일본 땅에서 감사를 통해 힘을 얻고, 틀림 없이 영육의 치유를 받게 된다. 감사는 정신적인 치유가 감사이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다. 감사 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하나님을 떠나기에, 사단에게 속아 늘 원망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오늘도 또 죽을 때까지 계속 감사해 보시라. 어떠한 영광을 나타나게 되는가 두고 보시라. 다른 사람들이 얻지 못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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