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후 1:1~1:4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4절을 보면,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그렇다. 우리가 기도하러 왔는데, 기도에는 낮은 기도가 있고, 높은 기도가 있다. 큰 기도가 있고 작은 기도가 있는 것이다. 믿음 대로 응답이 온다. 내 기도가 큰 기도라면 큰 응답이 온다. 심은 대로 오게 되어 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잘 묵상 해보아야 한다.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의 성품에 맞는 기도를 해야 맞는 것이다.
낮은 차원의 사람은 세상으로 부터 공급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일반 적인 것이다. 그냥 월급으로 의식주를 해결해 나간다. 낮은 차원의 사람은 자신의 노력과 수고와 일을 통해서 공급을 얻어 살아가는 사람이다. 교인들도 70~80프로는 그 속에 있을 것이다. 나쁜 건 아니다. 수준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높은 차원은, 세상의 시스템으로 부터 공급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시스템으로 부터 공급받는 사람이다. 성경의 렘넌트들은 자기의 힘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다. 어디에 있어도 괜찮다. 공급원이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공급받으며 살아간다.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들이다. 요셉도 다니엘도 하나님이 주시는 공급이 있었다.
롬8:7에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후사는 메마르지 않는 공급의 근원 속에 있는 것이다. 이삭이 샘의 근원을 발견했다. 메마르지 않는 축복을 계속 얻게 되었다. 엡1:3에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신다고 말씀 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 주셨다고 말씀 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이 중요하다. 달라 안달라의 수준이 아니다. 고후8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난하게 되는 것은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 하신다. 하나님께 받은 이런 신분과 권세를 모르는 영적 상태가 되면, 세상에서 열심히 살면서 피곤하다. 메마르지 않는 공급원이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니, 세상에서 공급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여러분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지마라. 이것은 소유를 말하는게 아니다. 돈이 많아도 가난한 자는 많다. 결국 나 중심으로 사는 사람들, 세상 중심, 성공 중심으로 사는 땅의 것을 바라보는 낮은 차원의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이다. 내가 세상에서 공급받아 살아가겠다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다.
내가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공급을 받아야 하고, 내 경제가 하나님의 일에 전도와 선교에 참여하는 자가 부유한 자이다. 전도 선교 교회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영적으로 아주 가난한 사람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경제가 있든지 없든지 신에 성품에 참여한 사람 살리는 일에 쓰임받는 경제가 되는 것이 부유한 사람이다.
그래서 여러분의 기도가 신의 성품에 참여된 기도를 해야 한다. 뭔가 필요한 걸 주세요가 아닌, 하나님이 언약과 선교와 교회와 후대를 위해 내가 가진 것들이 그 일에 쓰임 받을 수 있는 기도를 해야 한다. 나의 공급원이 그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세상 방식으로 살아간다.
문제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계획과 갶이 없어야 한다. 우리의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의 뜻과 언약과 갶이 없는, 하나가 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이미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여된 자가 되었다. 나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과 동떨어진 기도가 된다. 아무리 울며 기도해도 안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기도의 틀을 바꿔야 한다. 한나가 기도해도 틀을 못바꾸니, 그 기도를 계속 한다. 눈물 흘리면서. 남을 미워하면서. 전혀 응답이 없다. 기도의 틀을 바꿀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게 나에게 각인 되어야 한다. 한나의 기도는 일반 육신적인 기도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세상의 아이가 아니다.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는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한나와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그 시대에 쓰임 받는 기도를 시작하니 응답이 바로온다. 그 응답을 통해 엄청난 역사가 일어난다. 자녀도 더 주신다.
성경에 보면, 자기의 힘으로 성공한 사람은 없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언약 속에서 복의 근원의 축복을 받았다. 이삭 야곱 요셉도 다 그렇다. 우리의 틀을 바꿔야 한다. 나의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의 성품에 맞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게 큰 기도이다. 하나님의 기도이다. 높은 차원의 기도이다. 기도의 내용이 빛의 경제와 연결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빛추는 빛과 연결되는 기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쓰임받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기도는 입만 가지고 하는게 아니다. 기도를 하고, 우리의 삶이 기도가 되는 것이다. 광고를 잘 들으라는 것이 그 말이다. 기도가 내 삶에 연결되어져 가야 한다. 우리의 삶과 경제가 빛을 발하고, 교회와 시대와 후대를 향한 헌신이 실제 있어야 한다. 언약을 잡은 기도가 있지만, 그게 삶과 연결이 되어야 한다. 기도는 100프로 응답이 오기에 그 기도가 내 삶에 연결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게 나의 삶의 헌신이다.
결론이다. 기도의 틀을 조금씩 바꿔나가고 계실 줄 믿는다. 나의 가난, 나의 배경. 하나님은 그런거 안본다.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를 부유하게 하려 하셨다면, 우리가 그 응답을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나의 공급의 통로다. 지금도 일본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해 나가고 계신다. 언약이 흘러가고 있다. 그 속에 내 인생이 있다. 그렇다면 나의 기도가 어떤 기도가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언약 운동에 동참하는 기도와 헌신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성품에 동참한 자이다. 하나님의 일이 나를 통해 이루어져 나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기도가 되어지길 바란다.
낮은 차원의 기도보다 높은 차원의 기도. 작은 기도보다, 큰 기도. 내 뜻을 이루려고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기도를 해라. 예수님도 그렇게 기도하셨다. 다니엘과 세친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죽음 속으로도 들어간다. 오바댜도 에스더도 기생라합도 다 그렇다. 신의 성품에 동참한 자들이다. 내가 똑똑한 사람은 그게 잘 안된다. 정말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에 답 난 사람만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기도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내일 오신다면 교회 건축도 교회 헌신도 필요없다. 어렵고 힘들때 필요할때 하는 것이 헌신이다. 이 일본땅에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정말 교회가 중요하구나. 정말 후대를 살려야 하는 구나. 그걸 봐야 큰 기도를 하게 된다. 아버지의 뜻에 맞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이미 주셨고, 세상의 썩어질 것이 아닌,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되도록 이미 하셨다. 이 시간 하나님의 큰 기도를 회복하시는 시간 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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